부모님에게 사직서를 던진다고 당차게 말하고 출근했지만 막상 사무실에 도착하니 마음이 복잡했다.
고민을 계속 하다가 점심시간이 와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 이후에 고민을 계속 하다 보니 결국 퇴근시간이 다가와 퇴근했다.
집에 돌아오자 엄마가 방으로 오더니 물었다.
“퇴직서 냈어?”
“아니… 나는 내가 엄마, 아빠한테 시간을 주는 건 줄 알았는데 나도 시간이 필요했네.”
엄마는 알 수 없는 웃음을 하고 나갔다.
나는 그때 확실하게 알았다.
사실 부모님 핑계를 대면서 퇴사를 미루고 있었다는 것을.
실제로는 내가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던 것이었다.
그날 그렇게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그러자 저녁에 문득 퇴사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그날 나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상상 속에서 다음날 사직서를 내고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을 껴안고 이렇게 말했다.
“나를 믿어 줘서 고마워.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그 말이 내 안에서 들리자마자 곧장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그 말이 내가 나에게 건네는 말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었으면
듣자마자 눈물이 쏟아졌을까?
나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필요했다.
그리고 선택에 대한 나의 신뢰, 가족의 신뢰가 나에게는 너무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혼자 한참을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눈물이 그쳤을 때, 내 안이 깨끗하게 비워져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 나는 사직서를 낼 확신을 가지고 출근했다.
근데 해외에 있던 오빠한테 카톡이 왔다.
“너 퇴사하게? 왜 퇴사해? 계획이 뭔데?”
나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나름 지금이 기회임을 설명했고
그러자 오빠는 약간 흥분한듯 퇴사를 강력하게 말렸다.
근데 놀랍게도 내 안에는 어떤 감정도 요동치지 않았다.
그리고 오빠랑 한참 카톡을 주고받는데
팀 미팅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읽씹(?)을 했다.
미팅 끝나고 바로 점심 먹으로 갔고,
한참 뒤에서야 오빠 카톡을 봐서 답장했지만
그때는 오빠의 흥분도 가라앉은 게 느껴졌다.
나는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나의 결정을 누군가에게 설득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는 것을.
그래서 오빠에게 가볍게 답장했다.
“암튼 알겠어 생각해볼게~”
그리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미안하지만 내가 오빠한테 베풀 수 있는 배려는 거기까지 였다.
일단은 오빠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나의 선택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날 그렇게 나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 아빠에게 말했다.
“퇴사했어.”
그리고 아빠에게 웃으며 악수하자는 제스처를 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던가.
아빠는 분명 화가 났지만 내 손을 가볍게 뿌리치는 정도로 끝났다.
그리고는 저녁 먹으면서 얘기했다.
“셋이서 여행이나 가자고 평일에!!”
그러자 부모님도 결국엔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사실 이렇게 부모님이 순조롭게 받아들인 게 나에게는 굉장히 이례적인 날이다.
왜냐하면 그 전에는 퇴사 얘기를 한번 꺼냈다가
언행이 서로 격해지기도 했고,
자칫 잘못하면 집안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의 의견을 억지로 굽혔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뭔지는 몰라도 ‘될 일은 되는구나.’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