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어느 정도 성장하니 유치원을 가고, 초등학교를 들어갔다.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니 취업했다.
처음 회사에 신입으로 입사했을 때 문득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지금까지는 언제나 정해진 끝과 새로운 시작이 존재했다. 중학교를 마치면 고등학교를 시작했고, 고등학교를 마치면 대학교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정해져 있던 끝과 시작이 나에게는 오히려 위로였다.
‘곧 있으면 새로운 삶이 펼쳐질거야…’ 그것은 나에게 일종의 ‘희망의 문’이었다. 그 문을 넘으면 나는 지겹고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수 있었다. 새로운 곳에는 ‘지금보다 더 나은’ 무언가가 있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미래만 바라보며 지금을 버리며 살아갔다.
근데 입사를 하고 나니 정해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심장이 덜컹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제 앞으로 평생 이렇게 사는 건가? 나는 이제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지?’ 이 생각에 숨이 턱 막혔다.
새삼 오랜 세월 동안 일했던 아빠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빠도 이렇게 힘들었을까?’
근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어느새 나는 회사라는 곳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업무 스트레스도, 사람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 법을 터득했다. 결국 모든 것은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걸 배우게 됐다. 이 배움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가르침 중 하나다.
회사는 나를 한층 더 성장시켜준 곳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이 있었다. 나는 왜 자꾸 시들어가는 걸까? 왜 삶은 지루한 걸까? 회사가 이렇게 편한데,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
한때 이런 말을 들었다. “너가 행복에 겨워서 지금 만족하지 못하는 거야.”
나는 유학도 다녀왔고, 여행도 다녀봤고, 돈도 벌고 있었고, 취미도 즐기고 있었다. 물질적으로 부족함을 느껴본 적은 없다. 이건 당연히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정서적인 안정감은 달랐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가장 힘들 때 의지할 곳을 찾지 못했다. 내 감정을 참는 것 말고는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은 나를 감추고 살아야 하는 숨막히는 곳이었다. 당연히 나는 삶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세상이 재미가 없었다.
‘내 것’이라는 게 과연 존재는 하는 걸까? 내 옷, 물건, 가방은 전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기준에서 선택됐다. 물질뿐만이 아니라 내가 하는 생각, 말, 행동 모든 것들이 타인의 평가가 기준이 되었다. 내가 아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 좋은 딸, 좋은 직원, 좋은 친구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니 ‘내 삶’이라는 건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내 삶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건 아니었다.
나는 완전히 새로 사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행복을 떠나서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내 삶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내 삶에 대한 갈망이 나를 탐구하는 길로 이어졌고, 나를 알아갈수록 나라는 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참 아름다운 경험이다.
세상이 더 다채로워졌다. 나는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세상을 믿기 시작했고, 두 팔 벌려 세상을 환영했다. 이건 자존감의 변화였다. 나를 더 사랑하니 세상도 사랑하기 시작했다. 세상 탓, 부모님 탓,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지독한 타인과의 비교와 시기 질투가 없어졌다. 나는 나만의 길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게 가능할 정도의 ‘자기 신뢰’가 쌓이고 있었다.
퇴사 후의 삶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내맡김’이다. 내맡김, 그리고 더 많은 내맡김. 평생을 예측 가능한 삶만 살아오다가 완전한 미지의 세계에 몸을 담갔다. 이것 자체로도 많은 도전이다. 진정한 도전이란 익숙한 것을 좇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나에게 주입된 오래된 신념과 그에 따른 행동패턴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익숙한 것들을 내려놓고 미지의 세계에 나를 내맡기는 것.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으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니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방황하기 시작했다.
퇴사 이후 나는 가장 큰 방황을 했지만 이보다 나를 깊이 이해했던 적은 없었다. 우리는 방황을 부정적인 것으로 단정짓지만 방황이 진정한 성숙의 길이라는 걸 나는 경험으로 배웠다. 방황이란 이것저것 부딪혀 보는 것이다. 이것도 해보고 안된다 싶으면 무너졌다가 저것도 부딪혀보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은 자기가 직접 해보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에 엄청나게 높은 가치를 둔다. 익숙한 것이란 시행착오가 없고, 편리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익숙한 것에는 답이 정해져 있다. 답이 정해져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근데 그 답이라는 게 ‘나의 답’이라는 것을 어떻게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있는가? 그게 답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내 답을 찾는 유일한 길은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다.
남들이 정해준 답을 따라 사는 것이 정말 ‘나에게’ 중요한 것인지 물어봐야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그 자신을 제외하고 누구도 알 수 없으며, 그 또한 해 보기 전에는 알지 못하는 법이다.” – 『자연』, 랄프 왈도 에머슨
단 한번 뿐인 나의 소중한 인생이다. 우리의 삶은 찰나의 순간이다. 지금 지나가는 이 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근데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인지, 그것을 알기는커녕 조금도 경험해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게 인생인 걸까? 내가 여기서 희생하는 건 고작 하루 이틀이 아니라 내 인생 전체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최근에 본 “고잉 홈”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스티브 잡스의 인생 멘토이자,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인 람 다스가 죽음을 앞두고 사랑과 삶, 죽음에 대한 깨달음을 전하는 다큐멘터리다. 영상 끝 부분에 람 다스가 아주 천천히 쇠약하고 숨에 찬 목소리로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이 너무 강력하게 심장에 들어박혀 잊히지가 않는다.
“당신은 이번 삶에서 무엇을 배웠나요?”
만약에 당신이 내일 죽는다면,
오늘이 살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면,
당신은 이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나는 인생을 배웠다고. 그 배움이 나에게는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고.
내가 배운 인생이란 이렇다. 인생이란 예측 가능하고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가치 있는 삶이란 사회가 인정해주는 삶이 아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고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모두가 똑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길을 걷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비인간적이고 비정상이다. 나는 기계처럼 시체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사람답게 실수하고, 실패하고, 배우고, 도전하고, 성공하고, 웃었다가, 울었다가 모든 과정 속에 ‘살아 있고’ 싶다. 결과에 초점을 맞추면 매 순간이 두렵고 의미가 없어진다. 인생은 과정의 연속이다. 지금 이 순간도 과정의 일부이다. 매 순간을 그저 살아있고 싶다.
삶이란 본질이 ‘알 수 없는 것’이고 그 불확실성 속에서 ‘내 삶’을 찾아가고 경험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것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지금의 삶이다.
퇴사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 답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정해진 답을 들어야할 것이 아니라 질문을 받아야 마땅하다.
당신은 인생에서 무엇을 경험하길 바라나요?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요?
당신이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당신은 이번 삶에서 무엇을 배웠나요?”
이 질문에 망설임 없이, 그리고 거절당할 거라는 두려움 없이, 모두가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싶다. 퇴사가 답이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답이다. 그 일은 회사에서 찾을 수도 있고, 회사 밖에서 찾을 수도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의 삶을 버리지 말라. 당신이 행복해야 세상이 행복해진다.
한 번뿐인 인생, 부디 즐겁게 살자. 내가 자녀가 있다면, 나는 나의 아이에게 인생은 아름다운 곳이라는 걸 가르쳐주고 싶다. 각박한 회색 빛의 세상보다는 따뜻한 노란 빛의 세상을 그 아이의 머릿속에 심어주고 싶다. 세상은 언제나 너를 환영하고 응원하고 있으니, 기쁘던 슬프던 모든 과정을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생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인생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너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니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두려워하지 말고 즐겨라, 더 즐겨라. 우리는 즐기려고 이 세상에 왔다. 세상은 나만의 색깔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큰 도화지다.
나는 그 세상을 나에게 먼저 선물하려고 한다. 나는 그동안 나에게 비판적인 말을 많이 해왔다. “너가 뭘 잘했다고 울어.”, “너는 더 완벽해 져야해.”, “너는 죄인이야.” 그런 나에게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나는 이제 정서적으로 많이 편안해졌고 나를 보살피는 법을 배웠다.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나만의 삶을 마음껏 펼치고, 즐겁게 살 수 있기를. 내가 행복할 수 있기를. 내가 평온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