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희망퇴직이 나만의 기회라는 걸 확신했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말할 경우 100% 거절할 것을 알고 있었다.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대기업’이란 평생직장과 같았다.
부모님에게 퇴사한다고 말할 생각만해도 골치가 아팠다.
무조건 반대할 것이고,
나는 또 답답함을 느끼고 서로 언성을 높일 모습이 빤히 그려졌다.
짱구를 굴려가며 어떤 게 나을지 고민했다.
‘그냥 계속 다니는 척하면서 퇴사할까?’
‘일단 퇴사하고 나중에 얘기할까?’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말 안 하고 퇴사한 다음,
아침마다 독서실로 출근하는 척을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나의 고민을 팀원들과 나누다가
이런 생각을 말했더니
한 분이 그러지 말라며 그것이 상처가 될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친한 동기에게도 말했더니
똑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부모님한테 상처가 될 것 같아.”
그래서 좀 더 고민을 하다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부모님께 굳이 상처를 주고
불편하게 매일 거짓말을 하면서 살기엔
여러모로 비효율적이었다.
그래서 설득하기로 결심했다.
부모님과 대화를 하기 전에
딱 한가지만 결심했다.
‘유쾌함을 잃지 말자. 웃으면서 말하자. 어차피 부모님도 나의 결정을 막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날 저녁 부모님과 밥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리 회사도 이제 희망퇴직 시작했어~”
(부모님의 반응을 살피며 한 템포 쉰다.)
“나도 이번에 퇴사하려고.”
(차분하게 부모님의 반응을 기다려본다.)
아빠는 곧바로 인상을 찌푸렸고 엄마는 “뭐?!” 화들짝 놀란다.
(올 것이 왔다.)
“우리 회사 이제 진짜 어려워. 인천으로 이사 간대. 그리고 우리 팀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지금 이미 사람들 엄청 나가고 있어.”
(거짓말을 좀 많이 첨가했다.)
“그리고 이번에 해야 위로금도 받을 수 있어! 여기서 10년을 다녀도 못 받을 금액이야!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최대한 차분하게 그동안 영업 10년차의 경력으로 약간의 과장 + 농담을 섞어가며 좋은 점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아빠도 맞대응 설득을 시작했다.
아빠가 말을 하는 동안 절대 말을 끊지 않고 평온한 표정으로 차분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들었다. (중요한 포인트)
그리고 마지막 멘트를 날렸다.
“아무튼 생각은 해보겠지만 나는 퇴사할거야. 이직은 진짜 어디든 갈 수 있어. 나는 경력이 좋아서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너무 걱정하지마”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며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킨다. 이직 계획이 없는 건 비밀...)
그렇게 첫 대화를 차분하게 마무리하는데 성공했다.
서로 언성을 높이는 일도 전혀 없었고 중간중간 웃으면서 농담도 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출근하는 나를 둘 다 불안해하며 쳐다봤다.
그 앞에서 나는 뻔뻔한 농담을 던졌다.
“아무튼 나 오늘 퇴사하고 올 테니까 돌아오면 축하해달라고!!”
곧바로 문을 닫고 도망 나와버렸다.
부모님에게 내가 보여주고 싶은 태도는 딱 하나였다.
인생은 그리 심각하지 않고,
나의 선택에 대해서 나는 확고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당황해하는 부모님을 등지고 출근길에 나섰다.
하지만 당당하게 농담을 던진 것과 달리
나의 마음은 싱숭생숭 했다.
‘나는 과연 준비가 된 걸까?’ 스스로 물었다.
내 안에는 아직 완벽한 확신이 없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렇게 땅바닥을 보며 생각에 빠진 채 마지막(?) 출근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