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결정할 때 한 가지 기준이 있었다.
‘고통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이었다.
그 고통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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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가능한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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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불가한 고통
두 고통 모두 좋지 않지만,
특히 사람들은 예측 불가한 고통에 더 큰 두려움을 느낀다.
예측 가능한 고통은 경험으로 판단할 수 있다.
큰 보상이 있다면 견뎌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달리기에서 고통은 견딜만하다.
보상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예측 불가한 고통은 다르다.
고통의 크기를 판단할 수 없다.
아무리 보상이 크더라도 막연하고 두렵다.
따라서 사람들은 예측 불가한 고통을 쉽게 선택하지 못한다.
퇴사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도 그래서 퇴사가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두 가지 고통을 직면했다.
"회사를 다니는 고통 VS 퇴사 후 겪을 고통"
두 고통을 비교한 끝에 퇴사 후에 겪을 고통이 더 견딜만하다고 판단했다.
왜 그랬을까?
퇴사 후에 겪을 고통은 내가 대응할 수 있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리스크는 대비하면 된다.
설령 실패가 예상된더라도 얼마든지 돌아갈 길도 있다.
하지만 회사를 계속 다님으로써 얻게될 고통은 달랐다.
내가 대응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바로 후회였다.
"행동하지 못한 후회"
무덤 앞을 생각했다.
도전하지 못한 후회와 고통은 되돌릴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그 결정은 내가 감당할 고통을 냉정히 판단한 결과였다.
선택은 원칙과 기준이 중요하다.
이 때 "어떤 고통을 견딜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것은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