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기업으로 이직하기 전
전직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
나의 직속 상사가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업무에서 나를 노골적으로 빼내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 사무실은
연차 순으로 자리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연차가 높을수록 안쪽 자리에 앉았다.
가장 막내가 바깥쪽에 앉아 있었는데
제일 안쪽에 있던 나에게
둘이 자리를 바꾸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때 후배의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하던 표정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부터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나는 상사가 무슨 말만 하면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눈치보기 바빴고 그러면서도
후배들에게 나의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걱정하며
그들의 눈치도 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속으로는 바들바들 떨고 있으면서
겉으로 태평한 척을 하고 있으니
정신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나는 그 시기에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엄마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단 하루라도 빨리 지옥 같은 그곳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내가 부족한 부분은 없었는지 물어보며
조금만 더 버텨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도 홧김에 엇나갈 내가 두려워서 그런 말을 했음을 알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 말이 나를 더욱 처량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때부터 오기를 가지고 이직을 악착같이 준비했다.
무기력함이 분노로 올라오고
분노는 복수심이 연료가 되어 불타올랐다.
야근하고 10시에 집에 오면 그때부터 이직 준비했다.
이직을 하더라도 누가 봐도 ‘점프업’인 곳으로 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대기업으로 이직 성공했다.
그때의 성취감과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새로운 회사로 입사 전,
나는 컨셉을 아예 바꿔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전에서 괴롭힘을 당한 건 나에게 강한 트라우마로 남았지만
그 근원이 나에게 있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나는 회사에서 ‘선을 긋는’ 편이었다.
상사가 시키는 일은 똑바로 잘 하는 편이었지만
딱 그 정도 까지었다.
그 이상의 정을 붙이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회사에서는 완전히 컨셉을 180도 바꾼 것이다.
직장 상사에게 나의 개인 이야기도 하면서 친해지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스탠스로 질문을 자주 했고
이미 알고 있던 답을 들어도 새로 알게 된 것처럼 기뻐했다.
나의 기준에서 나를 완벽하게 굽힌 것이었다.
그러자 모든 인간관계도 180도 바뀌었다.
이직한 곳에서 부서 이동이 있으면서 상사를 3명 만났지만
세 분 다 감사하게도 나를 무척 이뻐해 주셨다.
나는 실제로도 그분들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고 함께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내가 바뀌니 세상이 바뀐 것을 경험한 첫번째 사례였다.
이직한 곳에서 상사를 비롯해 직장 동료들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 때문에 힘든 게 얼마나 마음을 괴롭게 만드는지 알기에
이런 회사생활이 너무 감사했다.
나는 한때 전 직장 상사와 비슷한 사람의 실루엣만 봐도
심장이 떨리고 치를 떨었다.
하지만 이제 진심으로 그분에게 감사하다.
때에 따라 굽히지 못하면 내가 부러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귀인이다.
인간관계를 쉽고 이롭게 만다는 ‘치트키’ 문장이 하나 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나의 의지를 굳건히 지킬 필요도 있지만
때로는 완전히 굽힐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유연성을 기를 때 인간관계가 수월해지고
나의 삶의 질이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