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니, 참 좁은 길을 걸어왔다.
외길이었다.
퇴사는 본래 좁은 길이다.
혼자 걷는 길이기 때문이다.
퇴사는 왜 좁은 길일까?
퇴사는 왜 외로운 걸까?
퇴사는 변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이나 대기업을 퇴사한다고 하면 주변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미쳤다vs부럽다.
이 반응에는 역설이 담겨 있다.
우리는 변화를 갈망하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중적 존재다.
안정적인 직장, 높은 연봉, 승진
이 기준은 사회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표준이다.
표준 속에서 우리는 회사의 규모와 월급으로 사람을 양분한다.
사람들은 표준 때문에 가치와 의미를 상실했다.
소유와 지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급을 평가한다.
이 표준은 너무나 익숙해졌다.
따라서 표준을 벗어나려는 시도는 변화다.
그리고 변화는 저항하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변화는 본질적으로 두렵다.
하지만 세상이 존속한 이유는 변화 덕분이다.
세상은 고여 있지 않다.
끊임없이 변화를 통해 생명을 이어간다.
한편 변화의 순간에는 늘 희생과 피가 존재했다.
가까운 사례로 민주주의가 있다.
민주주의가 탄생한 과정에서 수많은 피와 얼룩이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독립과 개혁도 마찬가지다.
변화는 생명을 만드는 동시에 희생을 만드는 양면성을 지닌다.
이 때문에 우리는 변화를 필연적으로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변화를 거부한 순간, 소멸이 찾아온다.
역사상 변화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소멸했다.
오직 변화만 살아남았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변화를 따르지 않는 순간 소멸이다.
내가 나로서 존재한다는 건 변화다.
변화하지 않으면 '나'는 그치게 된다.
반면, 변화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상대의 변화는 저항이자 도전이다.
마키아벨리는 변화에 대해 "적은 많고 도와줄 사람은 적은,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나의 변화는 타인에게 공격으로 보일 수 있다.
그래서 퇴사는 외롭다.
퇴사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생존이 아니다.
가장 큰 일은 다가오는 저항을 견디는 일이다.
그 저항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마음공부다.
마음공부는 저항에 맞서지 않는 힘을 길러준다.
저항 속에서도 그저 흐르도록 고요히 다스릴 수 있는 힘을 배운다.
나에게 마음공부는 세 가지다.
독서, 글쓰기, 그리고 명상이다.
독서는 세상의 언어를 배우는 시간이다.
글쓰기는 그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만드는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명상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을 깨닫는 시간이다.
이 세 가지는 마음 공부는 퇴사라는 외길을 유유히 걸어갈 힘을 길러준다.
변화는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만나는 외로움과 두려움, 저항도 필연적이다.
퇴사 역시도 변화라면
우리는 저항을 흡수할 수 있는 감정적 자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