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뼛속까지 시린 겨울이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차가움이 폐부를 찔렀다.
그때 내 폐부를 찌른 것은 차가운 공기였을까?
아니면 퇴사에 대한 열망이었을까?
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다.
어김없이 나는 새벽 버스를 타고 과천정부청사를 향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영혼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국가직 공무원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뼛속까지 공무원이라고 말했다.
일정한 틀 안에서 안정적으로 근무하는 환경은 내 성향과 잘 맞았다.
사주에도 공무원이 나올 만큼, 공무원은 나와 잘 어울렸다.
관운도 좋았다.
동기 중에서 승진이 가장 빨랐다.
짧은 경력이었지만 다양한 기회와 업무를 경험할 수 있었다.
덕분에 모두가 선망하는 핵심 부서에서 근무했다.
이대로 지낸다면 승진은 물론, 내 인생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부모님의 자랑이었다.
공무원 주가가 가장 높았던 2017년,
100:1의 경쟁률을 뚫고 1년 만에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결혼까지 골인한 내 모습을 보며 부모님은 나를 다 키웠다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처음으로 부모님의 뜻에 역행하는 선택을 했다.
그 선택은 퇴사였다.
부모님께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아들은 새로운 삶을 찾겠다며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었다.
남들처럼 결혼하고, 손주를 볼 시기에 방황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부모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나는 자유 의지를 원했다.
조직의 명령에 따라 근무지를 옮겨 다니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평생 타인의 선택과 지시를 따라 살고 싶지 않았다.
자유를 원했다.
사는 곳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일하는 곳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마치 조직을 '우리 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직장인을 가축으로, 월급을 여물로 여기는 위험한 생각을 했다.
자유를 반납한 대가가 월급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미욱하고 건방진 생각이었다.
나는 삶에 대해 너무 진지했다.
아니, 오만했다.
나는 평범한 삶을 존중하지 않았다.
생명을 영위하는 노동의 가치를 업신여겼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직장인의 삶을 부정했다.
평범한 인생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몰랐다.
퇴사 과정에서, 나는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 차 있었다.
현실적인 감각이 부족했다.
이곳만 벗어나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거란 착각 속에 빠져 살았다.
자기 객관화에 실패한 것이다.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마음은 위선이었다.
나는 퇴사를 선택한 게 아니라 도망쳤다.
평범함을 지키는 '고단함'을 피한 것이다.
그래서 내 퇴사는 실패한 퇴사이다.
퇴사 후에야 나는 이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삶에서 처음으로 내면의 소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돌아가도 나는 다시 퇴사를 선택할 것을 알고 있다.
내가 퇴사를 쉽게 결정한 이유는 지금껏 내 인생의 난도가 쉬웠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영혼이 말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세상이 알려주는 방식대로 살았다.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은 쉬운 일이다.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인생의 난도는 쉬웠다.
지금까지 인생이 쉬웠기 때문에 세상을 쉽게 본 것이다.
그래서 선택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사직서를 제출하기 전날, 아내에게 말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아내는 대답했다.
"퇴사해도 괜찮아. 우리 아직 젊잖아. 둘이 합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야."
이토록 상냥한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무엇을 느꼈을까?
초라하게도, 나는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끼지 못했다.
적어도 실패하더라도 내 옆에 아내가 있을 거라는 안도감을 느꼈다.
이처럼 최악의 순간을 먼저 생각하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아내를 지키기는커녕 기대고만 싶었던 한심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내 퇴사는 실패한 퇴사이다.
하루하루 생존해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내가 선택한 방식은 성장이다.
야생의 모든 생물은 성체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성장한다.
성장하지 않는 것은 모두 죽는다.
야생에서 성장은 곧 생존이다.
그래서 내 목표는 생존이다.
어제보다 더 나은 하루가 목표이다.
하지만 내 시선은 자꾸 먼 미래를 향한다.
앞이 캄캄한, 도무지 보이지 않는 막연한 미래를 본다.
그때마다 나는 시선을 돌린다.
현재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 하루, 생존
매일 생존을 생각하면 인생의 무게는 가벼워진다.
우선순위를 쉽게 정할 수 있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당장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알 수 있다.
이제 나는 퇴사를 사고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제는 단순했다.
사고가 터졌으니 수습하면 되는 것이다.
중소기업 입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