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이 이루어졌어!”
회사에서 희망퇴직 공고가 떴을 때 마음속으로 외쳤다. 첫 회사였던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하고 두번째 회사에서 6년차가 되던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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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는 꿈이 뭐고?” 첫 회사 사장님이 여쭤 보셨다.
“저는 제 것을 하고 싶습니다.” 이제 막 입사한 신입인 내가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베짱인지 모르겠다. 이제 막 입사한 신입이 사업을 생각한다니? 그렇다면 회사에서 열심히 배운 것을 전부 본인 사업에 써먹겠다는 뜻인가?
그렇다. 이것은 모범 답안과는 안드로메다급으로 거리가 멀다. “저는 여기서 임원이 될 때까지 뼈를 묻겠습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사장님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시며 흡족해하시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는 열정 넘치는 신입이었다. 그런 나를 사장님은 다행히도 귀엽게 봐주신 듯하다.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늘 확신이 있었다. 이런 걸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하는 걸까? 소름 끼치게 기막힌 사업 아이디어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누군가 나에게 꿈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나의 대답은 늘 똑같았다.
“사업할 거예요. 내꺼를 하고싶어요”
내가 사업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두가지였다. 첫번째, 자유를 원했다. 회사에서는 내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답답했다. 눈치 주는 말들을 감내해야 하고 그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힘들었다. 명령조는 왜 이렇게 거슬리는 걸까. 정말 별것도 아닌 걸로 기분이 상해서 복수심을 느끼곤 했다.
두번째,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사고 싶은 옷도 마음껏 사고 해외여행도 훌훌 떠나버리고 싶었다. 가족들에게는 비싼 음식과 명품도 사주고 싶었다. 회사만 다녀서는 이것들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유를 얻고 부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 그것이 나를 계속 채찍질했다. 사업을 해보겠다고 코딩도 직접 배워보고 스마트스토어도 돈 주고 강의를 들으며 운영해봤다. 하지만 처음에 불타오르던 열정은 어디로 간 건지 어떤 것도 6개월 이상 유지하지 못했다.
‘그냥 안정적으로 편하게 살까… 그래, 이렇게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것도 복이야~ 평범하게 살자.’
나를 타협하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한곳에 정체된 듯한 느낌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원래 인생이 이런 걸까? 원래 이렇게 매일 똑같은 하루만 살다가 이대로 죽는 건가?’ 뭔가를 계속 놓치고 있는 듯한 그런 찝찝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내가 도대체 원하는 삶은 뭘까?
나는 왜 만족을 하지 못할까? 나는 왜 계속 불안한 걸까?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걸까?
궁극적인 질문이었다. 알고 보니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다. 코딩? 스마트스토어? 이건 그냥 남들이 그걸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소리를 듣고 무작정 덤벼든 것이다. 결국 그 끝에는 세상 애매한 상태로 끝났다. 이건 한 것도 아니요, 안 한 것도 아니요! 하지만 이것 또한 경험이니 후회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야만 했다. 나는 단순하게 유명해지고 싶었고, 부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왜? 왜 나는 유명해지고 부자가 되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 되면 남들에게 인정받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남들의 인정을 받아야만 내가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결국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은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고 싶었던 것이었다.
행복... 그것은 남의 인정과 사랑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걸까?
진정한 행복이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원하는 것이 있었다. 시간적 자유를 얻고 싶었다. 회사에서 고정된 시간동안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간을 자유롭게 원하는 곳에 쓸 수 있는 권리. 어쩌면 당연한 권리이면서도,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그것을 갈망했다.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싶었다. 나는 꿈이 뭘까? 내가 좋아하는 일은 뭘까? 그저 대학 졸업하자마자 취업해서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하다 보니 영업직 MD로서 10년 가까이 경력을 쌓아왔다.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MD가 나에게 적성이라 믿고 열정적으로 일했다. 실제로도 나에게 맞는 일이라고 믿었다. 나는 매뉴얼처럼 주어진 일을 하기보다는 창의적으로, 주도적으로 일하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MD로서 일하는 것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 적은 없었다.
문제는 나는 행복하지도, 괴롭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가끔 일로 짜릿한 성취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영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한 기계의 부품처럼,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일을 처리했다. 영감이 없는 삶. 그것은 너무나도 무미건조했다.
나에게는 불타오르는 열정이 있었다. 그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분명히 존재했다.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라’가 한 회사의 수장 앞에서 사업을 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던 그 패기와 열정!
그 열정을 쏟아낼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올해 초, 나는 내 꿈을 찾았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이게 내 꿈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었을 때 나의 머릿속은 온통 밝은 빛으로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깊고 명료한 깨달음이었다.
그 깨달음 하나로, 희망퇴직 공고가 떴을 때 나는 이것이 기회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