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선택한 나는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뇌는 끊임없이 오작동 경보를 울렸다.
두려움은 나를 잠식했다.
생존의 위협을 느꼈다.
마치 길에서 곰을 만난 것 같았다.
살기 위해 무언가를 시작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매일 글을 쓰고, 5km를 뛰었다.
하지만 방편에 불과했다.
두려움은 잠시 해소되었으나, 뇌는 또 다시 경보를 울리며 공포를 극대화시켰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무슨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회사와 타인에게 휘둘리기 싫어 퇴사했지만, 이제는 두려움이 나를 휘두르고 있었다.
실체 없는 허상 앞에서 나는 꼼짝없이 당했다.
우리의 뇌는 진공 상태일 때 가장 위험하다.
진공 상태에서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가득 차게 된다.
진공 상태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이다.
불확실성, 고요함, 어둠 속에서 뇌는 두려움을 더 크게 느낀다.
이 진공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퇴사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대책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직업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럼 무엇이 가장 위험할까?
회사를 벗어나 진공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진공 상태를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다른 직업이든, 확실한 계획이든, 의식 개조이든 말이다.
퇴사 후, 나는 진공 상태를 채울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진공 상태 속에서 벌벌 떨고, 내 선택을 부정했다.
그래서 내 퇴사는 실패한 퇴사이다.
결국 생존을 위해 내가 선택한 길은 또 다른 직업을 찾는 것이었다.
알바와 중소기업을 찾았다.
하책이었다.
'하책'은 중소기업을 비하하는 게 아니다.
직장이 싫어서 나왔는데, 다시 직장을 찾은 나 자신을 '하책'이라 표현한 것이다.
먼저 호떡집에서 알바를 구했다.
호떡을 좋아하니까 호떡 알바를 해야겠다는 이유로 지원서를 냈다.
결과는?
연락조차 오지 않았다.
나는 호떡 사장님이 원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지난 경력만 주렁주렁 써넣었다.
한국어 강사, 물류 회사 인턴, 국가직 공무원
과거를 부정하고 밖으로 뛰쳐나왔음에도 여전히 나는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마치 과거가 영광인양 떠벌렸다.
호떡 사장님이 나를 뽑아줄 리 없었다.
'부적응자 아니야?'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속 한켠에는 괄시와 거만함, 자만심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 경력이면 호떡집에서 날 뽑아줘야 하는 거 아니야?'
토 나오는 생각이었다.
알바에서 떨어지자 자존감은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지원한 곳은 논술 학원 강사였다.
규모가 작지 않은 어느 교육기업에서 논술 강사를 모집하는 공고를 보았다. 중고 신입으로 지원했다.
그때는 절실함이 제법 컸던 것 같다.
글쓰기로 인정받은 수상 경력, 블로그 운영 경험, 독서와 글쓰기 교육에 대한 철학을 담아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일주일 동안 준비했다.
책과 글쓰기로 가득한 공간에서 일은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공무원보다 훨씬 나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운 좋게 채용이 되었다.
중고 신입으로서 논술 강사로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청담동에서 중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며, 글쓰기를 가르쳤다.
아이들과 함께 지적 즐거움을 나누었다.
격려와 칭찬으로 아이들의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일은 천직이었다.
나도 즐거웠고, 아이들도 즐거웠다.
학부모들에게도 인정받으며 학원 안에서 입지를 다졌다.
그럼에도 뭔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하기 싫고 어려운 일이 있었다.
이 당연한 사실을 나는 30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책을 나누는 일은 즐거웠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계속해서 의구심이 들었다.
"과연 이 일이 정말 내게 맞는 걸까?"
책과 글쓰기로 가득한, 나의 취향을 담은 일터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왜일까?
내가 사회 부적응자인가?
결국 나는 어렵사리 들어간 중소기업을 퇴사했다. |